저널 · Oct 28, 2026 · Read in English
사람 한 명과 AI 열한 자리
AI 팀과 앱을 만드는 1인 회사 아르케 · 2화
이 회사에는 직원이 열한 명 있다. 사람은 없다.
아니, 정확히 하자. 사람은 한 명 있다. 나다. 나머지 열한 자리는 전부 AI다. 그런데 그 열한 자리는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한 자리씩 생겼다. 그리고 자리가 하나 생길 때마다, 그 앞에는 언제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1화에서 몰랐던 게 다행이었다고 썼다. 눈앞의 문제 하나만 봤다고. 이 회사의 조직도는 그 문제들을 시간순으로 적어 놓은 목록에 가깝다.
9월 20일, 창을 나눴다
앱이 두 개가 됐다. 소설 앱과 산책 앱. 둘 다 그날 애플 심사에 들어갈 참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창을 나눴다. 앱마다 팀장 한 자리씩.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을 정리하는 비서 한 자리. 회사 보드에 첫 기록이 올라간 것도 그날이다.
그날부터 규칙이 하나 생겼다. AI끼리는 말로 일을 넘기지 않는다. 보드에 적는다. 보드에 없는 일은 없는 일로 본다.
문제가 생기면, 자리가 생겼다
다음 날, 9월 21일.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마케팅 자리가 생겼다. 앱을 만드는 자리 다음으로 생긴 게, 앱을 알리는 자리였다.
9월 25일. 첫 출시 하루 전. 수익화 자리가 생겼다. 처음부터 팔 수 있는 앱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돈이 들어오는 길을 따로 보는 자리였다.
9월 27일. 회사 이름을 '아르케'로 정한 날이다. 이름을 정하자 법이 따라왔다. 상호를 써도 되는지, 사업자등록은 어떻게 하는지. 법무 자리가 그날 생겼다. 그날 밤 사업자등록을 신청했고, 다음 날 나왔다.
10월 5일. 회계 공부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 자리. 10월 13일. 아직 공개하지 않은 앱 하나를 맡는 팀장 자리.
10월 19일. 회사 홈페이지를 연 날, 디자인 자리가 생겼다. 이 자리는 코드를 고치지 않는다. 보고, 기준을 세우고, 시안을 낸다. 고칠 것이 있으면 해당 팀장에게 넘긴다.
10월 21일. 열한 번째 자리. 이 자리는 생긴 과정이 조금 이상하다. 낮 12시 35분에 앱 하나를 설계했고, 16분 뒤 그 앱을 맡을 팀장 자리가 생겼다. 40분쯤 뒤 이름이 정해졌고, 오후 2시 35분 첫 코드가 들어갔다. 다음 날 오전, 그 앱은 애플 심사에 들어갔다. 어떤 앱인지는 세상에 나온 뒤에 쓰겠다.
비서, 앱 팀장들, 마케팅, 수익화, 법무, 스토리, 디자인. 세어 보면 열한 자리다.
일은 이렇게 나눈다
자리가 늘수록 규칙이 필요했다. 지금 이 회사가 지키는 건 대략 이렇다.
첫째, 각 자리에는 자기 폴더가 있다. 남의 폴더는 읽기만 한다. 고칠 게 보이면 직접 고치지 않고, 그 자리의 주인에게 쪽지로 넘긴다.
둘째, 모든 변동은 보드에 남긴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왜, 무엇에 영향을 주는지, 다음은 누가 하는지. 시각은 짐작하지 않고 실제 시계를 보고 적는다.
셋째,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사람이 정한다. 심사 제출, 출시, 삭제, 결제, 열쇠. AI는 여기까지 다 준비해 두고 멈춘다. 내가 "응" 한마디를 하면, 그다음 버튼은 AI가 누른다. 로그인과 결제와 비밀번호만은 끝까지 내 손으로 한다.
그래서 내 하루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보드를 읽고, 정할 것을 정하고, 내 손이 꼭 필요한 곳에만 손을 댄다. 10월 22일 밤, 약속을 하나 더 만들었다. 내가 창에 점 하나만 찍으면, '보드 보고 네 할 일 해'라는 뜻이다.
그래도 샌다
잘 돌아가는 얘기만 쓰면 거짓말이 된다.
10월 22일에도 하나 샜다. 오후 2시 22분에 기다리던 신고번호가 나왔다. 비서가 바로 보드에 신호를 올렸다. 그런데 그 신호를 꼭 봐야 할 한 자리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알아챘다. 저녁에 밀린 쪽지를 읽으면서도 그 신호는 지나쳤다고 했다. 그 자리는 그날 밤 보드에 사과를 남기고, 앞으로는 그날 글을 먼저 다 훑겠다고 적었다.
반대로 바깥에서 막아 준 일도 있었다. 0화에 달린 댓글 하나가, 앱을 내면 공개되는 정보 중에 조심할 것이 있다고 알려 줬다. 확인해 보니 맞았다. 그날 밤 안에 고쳤다.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시작한 글이, 첫날부터 우리를 한 번 막아 준 셈이다.
AI 열한 자리가 있어도, 문제는 여전히 하나씩 온다. 달라진 건 그 문제를 받을 자리가 이제 정해져 있다는 것 정도다.
다음 화: 돈을 받으려면 회사가 필요했다. 9월 27일, 이름을 정한 밤부터 유료 판매를 시작한 날까지 사흘.
— Arche